"장애를 진단받았지만 장애인은 아니래요"
한국발달재활사협회
2024-11-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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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진단받았지만 장애인은 아니래요"
자폐성 장애 진단 받았지만, 장애인 등록은 안 되는 이들... 사각지대 해결해야
24.11.26 12:18최종 업데이트 24.11.26 12:18

▲아이들. ⓒ profwicks on Unsplash관련사진보기
초등학교 특수 학급에 다니고 있는 열두 살 A양. 또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어울리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장애인은 아니다. 말이 어눌하고 의사소통이 쉽지 않지만, 장애인이 아니다. 오늘도 무사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은 산더미인데, 지원은 없다. A양은 '미등록 자폐' 어린이다.
'미등록 자폐'란 자폐 스펙트럼 장애(자폐성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광범위한 수준에 걸친, 복잡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스펙트럼' 장애라고 부른다(서울아산병원). 같은 자폐여도 그 양상이 다 다르다는 뜻이다.
이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특성 때문에 '장애인'의 범주에서 빗겨나 사회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이들이 바로 A양 같은 미등록 자폐인들이다.
유난히 말이 느렸던 A양. 가족들은 교육을 위해 생활비의 절반을 쏟았고 여섯 살 무렵 겨우 사설 기관에 다니며 조금씩 말을 트기 시작했다.
공부는 곧잘 했지만, 상호작용이 어려워 학급 친구들에게 욕설을 듣기도 했고 놀이터에선 오해를 사고 소외되기 일쑤였다. 열 살이 되던 해 A양은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A양의 어머니는 자폐성 장애 진단 후 장애인 등록을 위해 행정복지센터에 방문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미해당". 적응 정도를 평가하는 사회 성숙도 검사 결과가 높아 장애인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느리지만 발달을 보이는 우리 아이, 교육 포기할 순 없어요"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자폐인과 보호자에게 큰 부담 중 하나는 교육비다. 장애인으로 등록되면 정부로부터 소득에 따라 발달 재활 서비스, 언어 발달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폐성 장애 진단만으로는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없다.
A양의 어머니는 "자폐인들은 운동, 언어, 인지는 물론 사회성 훈련까지 해야 하는데, 오로지 사비로 지출해야 해서 교육비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자폐인을 위한) 교육을 포기하고 싶다가도 아이가 느리더라도 발달을 보이고 있고 노력하고 있어서 포기도 못 한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소속 국립특수교육원의 '2023 특수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교육을 받는 자폐성 장애 학생 중 '사설 특수교육실을 이용한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71.6% (1만2927명 중 9255명)로 다른 장애 유형의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장애 학생 사교육 장소국립특수교육원에서 공개한 2023 특수교육 실태조사 재구성 ⓒ 자료 출처 국립특수교육원관련사진보기
월평균 사교육비 역시 가장 높은 항목인 '70만 원 이상 지출한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29.8% 으로 다른 장애 유형의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높았다.
미국 자폐 아동 응용 행동 분석 전문 기관인 'Kyo Autism Theraphy'의 한국인 행동 치료사 황별씨는 "미국은 지역 센터에서 '경증', '보통', '심한' 으로의 세 단계로 분류해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고, 진단을 받으면 지자체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라며 "한국은 진단만으로는 어떠한 지원도 없이 사회적으로 등한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적절한 지원책 없이 교육비나 치료비를 오롯이 가족들이나 보호자가 부담해야 하는 한국 자폐인들이 처한 현실을 지적했다.
우리나라 자폐성 장애 아동들을 위한 사설 특수교육실 교육비는 수십만 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장애인 등록은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막"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자폐성 장애 학생들에게 특수학교는 하늘의 별 따기다. 특수 교육 대상자 선정 여부도 장애인으로 등록된 경우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확실하다. 내년이면 초등학교 6학년인 A 양은 앞으로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특수 학급에 갈 수 있을지도, 가더라도 담임 교사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교육부의 '2024 특수교육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학교 특수 학급의 교원 1인당 학생 수는 4.43명으로 '학생 4명당 교원 1명'이라는 법정 기준은 이미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A양의 어머니는 "자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담임 선생님을 만나면 감사하게도 아이를 잘 챙겨 주시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학교에서도 쉽게 고립된다"라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장애인도 아니라는데 행동이 어색하거나 말이 어눌해 더 쉽게 무시당하거나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며 이는 많은 자폐 학생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게 되는 문제임을 지적했다.
'심하지 않은 장애' 신설, 해결책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장애 등급(1급에서 6급으로 장애 정도를 구분하던 기준)'이 폐지되고 '장애 정도' 기준이 도입돼 '심하지 않은 장애'와 '심한 장애'로 구분돼 판정된다.
현재 자폐성 장애는 GAS척도(발달장애 평가 척도) 포함해 언어능력, 지능 등 다양한 판정 기준에 따라 판정되는데, 자폐성 장애의 경우 '심하지 않은 장애'와 '심한 장애'로의 구분 없이 '심한 장애'로만 판정된다.
8년 전 자폐성 장애를 진단받은 중학교 1학년 B 군 역시 2023년 4월 장애인 등록에서 미해당 통보를 받았다. 이후 한 번 이의 신청과 올해 9월 다시 시도한 장애인 등록에서도 지능 검사 사회 성숙도 검사에서의 높은 점수를 이유로 같은 결과를 받았다.
서면 인터뷰에서 B군의 어머니는 국민연금공단에서는 지능이 높아 지적 장애를 동반하지 않는 자폐성 장애는 아무런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앞으로 B 군은 자립해 군 복무, 대입과 취업 등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 혜택이나 지원이 많지 않더라도 자폐성 장애의 '심하지 않은 장애'가 신설돼 이들이 자립해서 살아갈 때 최소한의 사회적인 보호 아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 자폐성 장애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는 보건복지부 국민신문고에 자폐성 장애의 '심하지 않은 장애' 신설에 관해 민원을 제기했고,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에서는 "해당 내용을 검토 중이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자폐성 장애의 '심하지 않은 장애' 신설이 미등록 자폐인에게 사회적 보호막의 역할을 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가기 위해서
지적 장애를 동반하지 않는 자폐인들은 마스킹(Masking) 훈련을 받는다. 자폐인이 자신들의 본성을 감추고 비자폐인들과 유사하게 상호작용하고 행동하기 위한 훈련이다. 이 과정에서 자폐인들은 우울감에 빠지거나 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편견으로 가득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자폐인들의 피나는 노력인 것이다.
오늘도 사회에서 무사히 살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장애 미등록 자폐인들. 이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이 변화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더 많은 지원이 생겨나 모든 자폐인이 좀 더 살아가고 싶은 세상이 되는 것이 수많은 자폐인과 그 가족들의 바람이다.권현서(khyeons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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